늦여름 뜰 안 화단에는 정겨운 꽃이 핀다

백일홍. 여름에 줄기 끝에 피는 꽃이 오래가기 때문에 백일홍이라 한다.

문뜩 어린 시절 뜰 안의 꽃밭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꽃도 좋아 했지만 꽃밭가꾸기를 즐겨 하셨다.  그때 마음 속에 심어준 꽃 하나가 지금도 피어 있는 것 같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정된 베란다에서 화분을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다.

집안에 있는 빈터에 화초나 나무를 가꾸기도 하고 푸성귀도 심는 곳, 그리고 장독대도 자리 잡은 곳이 뜰이다. 언제 봐도 정겨운 친구처럼 뜰 안 꽃밭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곳엔 늦여름 꽃들이 한창이다.

뜰 안 풍경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들판엔 벼가 푸른색을 잃어 가고 누렇게 익어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탐스런 수수 열매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예전에는 볼 수 없던 모자를 하나씩 썼다. 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요즘은 가을을 상징하던 코스모스가 계절 없이 피지만 역시 코스모스는 가을에 펴야 제격이다.

채송화. 전체가 퉁퉁한 다육질로 한낮에만 핀다. 흰색, 적색, 홍색, 황색, 흰색이 있다.

소박하면서 가냘픈 꽃잎을 가진 채송화, 손톱에 물들이던 봉숭아, 백일 동안 붉게 피는 백일홍, 다른 꽃들은 꽃을 접는 저녁에야 늦잠에서 부시시 깨어나는 분꽃…. 수탉 벼슬 모양에 제멋대로 주름진 맨드라미는 투박해도 붉은 천 질감이 있어 만져 보기도 했다. 항상 봐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과꽃을 보면 어렸을 때 부르던 동요가 생각이 난다. 

꽃잎이 나사처럼 감겨져 있다가 나팔 모양으로 피는 나팔꽃.

나팔꽃은 꽃밭 한켠에 묶어 놓은 줄을 따라 덩굴을 틀어 올라가고 있다. 봉숭아는 여름에 꽃과 잎을 명반과 섞어 짓이긴 뒤 손톱 위에 올려놓고 잎이 넓은 피마자 잎을 조각내어 감아 실로 단단히 묶고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탐스러운 붉은 빛으로 물든 손톱을 볼 수 있었다.

누나와 여동생이 하는 것을 보고 덩달아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던 기억이 난다. 첫 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의 붉은색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과꽃. 우리나라 북부지방 원산지로 유럽에서 개량되어 세계로 퍼졌다.

뜰 안 꽃밭은 꾸임이 없어 누구나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꽃밭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무심히 지나쳐도 뇌리에 남는 묘한 힘을 가졌다.  뜰 안 꽃밭은 어린 시절 봤던 것이지만 꽃은 개량되어 더욱 화려한 색채를 지녔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꽃밭의 터줏대감 과꽃, 분꽃, 채송화, 맨드라미, 백일홍 정도이다.

뜰 안 꽃밭

개량된 꽃도 좋지만 토종 맛이 나는 꽃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원산지는 우리나라가 아니지만 백년 이상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토착화 과정을 거친 꽃이어서 우리 정서에 꼭 맞다. 코스모스,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맨드라미 등이 그런 꽃이다.

토종 꽃과 함께 토착화된 귀화종 꽃을 보전하는 것도 우리의 몫인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 토종 야생화가 뜰 안의 꽃밭을 차지하는 추세여서 다행스럽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가까이 두기를 좋아했고 주거지 뜰 안에 꽃밭을 가꾸어 자연과 경계를 두지 않았다. 자연의 연속성을 받아들이는 심성을 엿 볼 수 있다. 지금도 시골이나 단독 주택에서 그 명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글/사진=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신문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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