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일부다처제

남자들이 근육의 힘으로 약한 여자들을 지배하면서 줄곧 일부다처제였던 구조가 일부일처제로 사회의 공인을 받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십년까지만 해도 축첩하는 예가 흔했습니다. 광복 이후 윤락방지법이 생기고 5.16 군사혁명 이후 사회정화 차원에서 축첩한 공무원들은 모두 쫓겨나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몇백 몇천년 동안 남편이라는 수컷이 다른 암컷을 탐내는 것이 DNA로 내려오는데 그리 쉽게 고쳐집니까.

좋았던 옛날 그때를 그리워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돈이나 권력만 있으면 젊고 예쁜 여자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엉큼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아내를 넷까지 둘 수 있다는 이슬람교도로 개종할 마음 까지 먹어봅니다. 말도 안 되지요. 그건 이슬람 종교에 대한 모독입니다. 아내를 여럿 둘 수 있는 연유는 잦은 전쟁으로 남자들이 많이 죽어 과부와 고아들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멧이 살아있는 남자와 여자의 숫자를 세어 봅니다. 하나, 둘, 셋…… 세어보니 남자 한 명에 여자가 네 명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러니 남자는 자기 아내 말고 세 여자를 데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겉으로는 싫은 척했으나 속으로는 좋았을까요? 한 집에 네 명이 살 수도 없으니 부자는 집을 네 채 지어야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방을 네 개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순서를 정해 드나들어야 했으니 아무리 마음이 맞는 아내도 나흘에 한번 밖에 만날 수밖에 없고 반대로 싫은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아내가 한 명이었을 때도 골치 아팠는데 네 명과 같이 살다 보니 맨날 투닥거리는 것입니다. 즉 한 명일 때는 남편에게 대들더니 둘이 되니 두 여자가 서로 싸우고 셋이 되자 예쁜 아내를 두 여자가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넷이 되니 둘이 짝을 지어 견제하니 비로소 조용해져서 남편이 편안했다는 믿거나말거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지만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네 명의 아내를 둔다는 것은 어림없는 말이라고 합니다.

"여보, 여우보살. 그러면 당신은 일부다처제를 옹호한다는 말이오?"
어머, 제가 언제 그렇다고 합니까? 일부다처제는 지금 중혼죄라는 법으로 엄금하고 있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박유라는 벼슬아치가 상소했습니다.

"우리나라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데도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아내를 하나밖에 두지 못하는데, 다른 나라 사람은 아내를 여럿 둘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자가 남아돌면 원나라에서 받치라고 할 것이니 관료들로 하여금 서처(庶妻)를 여럿 두게 허락하고, 평민들도 한 아내와 한 첩을 두게 하되 그 자식들이 차별 없이 조정에 벼슬할 수 있게 한다면, 인구가 날로 늘어갈 것입니다."

이 말에 새로운 여자를 탐하는 고려 남자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상소 내용이 순식간에 개성에 퍼졌고 여자들은 분개했습니다. 이 상소에 대해 중신들의 회의 소집이 열렸습니다.
"여보! 찬성 편에 손들면 알지? 너 죽고, 나 죽고야."
입궐을 서두르는 중신에게 늙은 아내가 주먹을 불끈 쥐고 협박을 했습니다.
"아, 알았어!"
일부다체제에 찬성을 하려고 은근히 마음먹었던 중신께서는 기가 팍 꺾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박유의 집 앞에 많은 여자가 몰려들어 시위합니다.
"저 늙은이가 여편네를 여럿 얻자는 뻔뻔한 사내인가?"
"그렇다네, 얼굴에 나는 도둑놈! 이렇게 쓰여 있구먼."
입궐하려 집을 나서는 박유에게 온갖 폭언이 쏟아졌습니다. 얼굴이 화끈했지만, 기왕에 저지른 일이니 관철하리라 다짐하고 바삐 궁에 들어섰습니다. 분위기를 살피니 옳은 말이라고 두 손들고 동의하던 중신들이 흘끔흘끔 눈치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거수로 투표에 들어갔습니다.

"찬성 한 표!"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손을 치켜든 사람은 달랑 박유,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크으, 이런 배신자들!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어쩌겠습니까? 고려인의 절반이 넘는 여자들을 적으로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부다처제의 시도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한 남자가 평생 한 여자만 바라보고 사는 남자가 과연 있을까요?

"여우 보살! 당신의 짝사랑, 조헌 선생도 첩도 있었다네."
네, 저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서출인 아들이 있으니 첩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서 슬픕니다. 고결한 선비 조헌이 아무리 본부인이 죽어서 가정을 이끌기 위해 아내를 두었다고 변명하지만, 기왕에 첩을 둘 거면 저를 첩으로 삼아야 할 것 아닙니까?
"여보, 여보. 당신은 여우인데 어떻게 인간의 첩이 된다는 말이요."
아, 그런가요? 어쨌든 일부다처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은밀한 간통은 물론이고 룸살롱, 방석집, 사창가 등등에서 매춘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영찬
소설가. 방송작가. 국제투명성기구 한국지부 정책위원
도서출판 활빈당 대표. 대표작 : '삼두매' 전3권 장기동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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