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ㆍ8월은 여름의 절정이다. 7월의 더위는 때로 장마가 식혀주지만 8월의 뜨거움은 피할 길이 없다. 피서를 가도 덥기는 매한가지이다.

그 더위를 뚫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타났다.

예고됐던 교황의 방한인지라 기다림과 설레임을 넘어 뭔가 큰 변화를 이루는 동인이 될까 기대감에 부풀었다. 5일간의 방한기간에 더위 따윈 없었다. 극 청량의 시간이었다.

이 시대에 태어나 살아가는 걸 그저 운명정도라 생각했는데, 위대한 인간의 본성을 아낌 없이 열어 보여준 그가 있어, 이제부턴 이 시대에 살고 있음에 자부심과 긍지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품위는 교회의 황제라는 교황에서의 발현보다 온전히 인간 프란치스코에서 나온다. 솜에 물먹어 들어가는 듯한 온화하고 화사한 웃음.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노인의 인자함이 아로새겨진 웃음에는 힘이 들어 있지도 않고 마냥 정겨움만 있었다. 그에게서 교황의 권위는 없었다. 사람 얼굴근육이 8천개라면 8천개의 조화된 웃음만 만발해 있었다.

또 하나의 놀라움은 깊은 통찰과 종교적 확신, 인류애가 뒷받침된 그의 수사기법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진리를 표방하지도 않으면서 그의 말은 전체를 아우르며 정곡을 찌른다. 첫 연설에서도 “사회구성원들의 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ㆍ협력하라”고 주문한다. 정치분열, 경제불평등을 일반론적으로 평범하게 말하고, 세부적인말로 “가난한 사람들과, 자기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라고 행동지침을 천명했다.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명동성당 미사 집전에서도 3분의 일본군위안부희생할머님들을 앞좌석에 배려하며 일일이 위로의 손길을 펼치며 그런 과거가 있다손 치더라도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았음”을 상기시킴으로서 그분들의 명예를 지켜주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는 의심ㆍ대립ㆍ경쟁의 사고방식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7번이 아니라 77번이라도 용서하라, 용서야 말로 화해로 이르는 문”이라고 강조했다.“화해시키는 은총을 여러분 마음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함께 나누라”함은 한반도의 고통이 통일을 지향하는 목표점에서 얼마나 감당키 어려운가를 감안 종교적 수사로 표현했다.

가난한 자의 대부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은 차로, 한국주재 교황청 대사관의 낡고 작은 방을 숙소로, 대사관 구내식당을 사용하면서 청빈과 낮은 곳으로의 겸손과 사랑을 몸소 보여줌으로, 부자들과 힘 있는 기득권에 마음 깊은 반성을, 부자로 사는 수도자들에게 경종을 내려주었다.

단지, 숫자로 말할 순 없지만 124위 순교자를 복자로 모시는 광화문 시복미사에 참여한 인파 90만명은 교인 말고도 일반인도 참관했을 것이다. 집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TV를 통해 참관한 사람들은 또 얼마였겠나.

가톨릭신자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 역사 속의 현장을 다시 재현하여 일깨워주고 다듬은 시복식에 순교의 아픔과 고통과 회한을 또한번 치르는 역사적 감동과 감명을 받았다.

소설가 김연수 씨는 “매정한 사회에 빗장을 건 내 마음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먼저 내민 손에 마음으로 빛이 스며들었다”고 고백한다. 아마 우리 국민들도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나 또한 삶의 이정표였던 신념과 관념들이 우수수 무너지며 새로운 지평에 환한 빛이 다가왔다. 개인적 사고에서 사회적 사고, 세상의 사고로, 그리고 종교적 사고로의 진전이다.

CNN의 보도처럼 한국은 물질적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는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고 이제 한국은 영적성장이 필요한 단계라는 충고를 관심 있게 받아들일 때다.

우리의 정치인, 기득권층, 공무원, 노조, 운동권등 기존의 힘 있는 세력들은 향후 어떤 변화를 보여줄 것인가! 교황 도착 직전 방사포 5발을 발사한 북한은 또 어떤 변화가 있을까!

“교회의 얼굴이 사랑의 얼굴일 때 예수님의 마음에 더 많은 젊은이가 이끌려 올 것” 이라는 교황의 말은 그 말씀으로 이미 교회를 노크하게 만든다.

갈등공화국 대한민국의 앞날에 치유와 평화가 깃들기를 고대한다. 모든 기득권은 사랑의 삶에 대한 요구로 내적쇄신의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