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광 경제환경국장

“백성 사랑하지 않으면 무관 쓴 도둑” 새겨야
김포 자긍심 가질 때 시민으로 행복할 수 있어
배려심 깊어 부탁 거절 못하고...요직 두루 거쳐

그는 동안(童顔)이다. 그리고 미남이다. 성격은 배려심이 깊고 사근사근해서 사업가였다면 바람깨나 피었을 타입이다. 소리 소문 없이.

그의 주변에는 인간관계가 좋아 사람들이 넘친다. 가슴에 미안함이 있으면 사과를 하지 않고 넘어가지 못한다. 그런 성격은 공직생할 과정에서도 배려심으로 표현됐다. 그런 결과인지 그는 소위요직만 거쳤다. 행정계장을 비롯해 기획담당관, 민선4기 비서실장, 자치행정국장과 경제환경국장 등 행정직이 누릴 수 있는 요직은 두루 거쳤다. 비서실장 시절에는 민원과 시장의 정책마인드를 조직에서 잘 살렸다. 왕 실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힘 발휘가 대단했다는 평가를 전제한 것이다. 행정의 생리를 잘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공직이란 무엇일까. 시민이란 이름을 내세우기 전에 김포시청이 더 내집 같은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게 현실이다. 35년 세월을 뒤집으면 그 가운데는 지역의 정서와 문화, 세대 간 공직생활의 희비들이 교차한다. 모든 게 떠나는 사람에게는 추억이고 인생이다.

청춘 바친 35년 공직생활 마감
임종광 경제환경국장은 이런 풍토에서 35년을 김포시청 공직자로 생활했다. 정년 3년을 남겨 놓고 7월 31일자로 전격 퇴임을 결정한 임 국장의 공직생활은 화려하기도 하고 여느 공직자들처럼 아쉬움도 교차한다. 35년에는 그만의 청춘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두 개의 수식어가 있다. 정통 행정관료란 단어와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사려가 깊은 것은 그가 여리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린 감정 뒤에는 시인 같은 섬세함이 자리잡고 있어 종종 시를 쓰기도 했다. 그는 누가 와도 거절을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칭찬 받는 스타일이다.

보람 얽힌 나날들을 뒤로 한 채 떠나는 그는 아쉬움도 많다. 시민들의 실체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상 같지만 허상일 수 없다는 게 임 국장의 시민관이다.

“행정은 시민들의 만족도를 채워주는 끝없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묵묵함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체취를 서로 공유하며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게 행정일 것입니다.”라고 행정을 논했다. 그는 또 “쉬운 것부터 해야 하고 시민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현장의 어려움을 법 이전에 시민적 삶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후배들이 아직도 시민을 대상화하여 거리감을 두는 모습은 그런 면에서 극복해야 할 부분입니다.” 라고 말했다. 

어려움 속에서 배려심 키워
그는 월곶면 개곡리 출신이다. 9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독수리 5형제로 자랐다. 어린 시절 그에게 삶이란 배고픔을 내색없이 참고 인내하며 서로를 챙겨주는 것이었다. 이때 형성된 형제애는 누구가를 무시하지 못하는 인정과 배려심으로 학장됐다. 지금도 큰 형님을 깍듯이 챙기는 모습은 남다른 애정에 대한 보답이자 부모 같은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다.

고향을 김포로 둔 사람들에게 시민은 가족 같은 사람이다. 이런 긍정성은 출신의 장점이다. 임 국장이 공직생활을 하며 항상 긍적적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이 작용해서이다. “어려서부터 서로를 배려하고 챙기는 것이 일상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그렇게 길지도 않지 않습니까.”

아웅다웅하며 남보다 한 발 앞서기 위해 남을 딛고 올라서는 사람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기도 한다. 평가는 후배들의 몫이지만 주변에 술벗이 많은 걸 보면 ‘악랄한 임’은 아닌 듯하다.

자신이 뽑은 최대 공적 3가지
임 국장에게 공직생활 중 가장 생각나는 일 세 가지를 물었다.

임 국장은 감정동 변전소 민원 해결과 120억 국비를 확보해 5개 읍면의 상수도 문제를 해결한 것, 13억원 예산을 확보해 민북지역에 인터넷을 연결한 사업을 자신의 최고 업적으로 꼽았다.

감정동 변전소 지하화 요구 민원은 주민들이 한전을 상대로 변전소를 지하로 건설해 달라는 대형민원이다. 김포 역사상 가장 고질적인 민원으로 4년간 집단시위를 비롯해 주민이 구속되기도 했다. 임 국장은 당시 주택과장으로 재임하며 이 민원을 담당했다. 협상을 잘 이끌어 4년간의 고질적인 민원은 막바지에 서명날인 순간만 남겨뒀다. 그러나 주민들이 한전의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그 순간 주택과장인 임 국장이 자신이 보증을 서겠다고 주민대표에게 제안하고 주민들은 그 안을 수용해 4년간의 감정동 변전소 사건이 종식됐다. 공직자 한 사람의 기지와 배짱이 빛난 일이다.

상수도 해결은 임 국장의 또다른 업적이다. 김포에 구제역이 유입됐을 때 5개 읍면 양돈농가의 가축들 대부분이 살처분 돼 주민들의 지하수에 대한 거부감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때 상하수도사업소장이던 임 국장은 국비 120억원을 확보해 5개 읍면에 상수도 공급을 해주었다. 빛난 일이다.

또 민북지역이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주민들 생활과 학생들의 학습에 어려움이 많던 2003년 무렵, 정보통신과장이던 임종광 국장은 사업비 13억원을 확보해 민북지역에 인터넷을 연결했다. 정보로부터 소외된 많은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누군가의 노력이 주는 햇살 같은 일이었다.

김포시민으로서 자긍심과 주인의식 가져야
그에게 행정이 뭐냐고 물었다.

“중국속담에 관직에 있는 사람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무관을 쓴 도둑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 중심에 누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시민이 누구인지를 알며 왜 그들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공직자들의 인생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시민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해 기우뚱거릴 때, 옆에서 잡아주던 공직선배들과 동료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때로는 손해도 볼 때도 많았다는 게 임 국장의 소회다. 그래서 “인생은 밑질 때도 있다”라는 게 그의 인생 좌우명이 됐다.

임 국장의 바람은 김포시민들의 자긍심이 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신도시만 해도 완성된 지 15년이나 된 일산신도시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한강신도시 역시 10여년이 지나면 일산 못지 않은 도시로 변모할 것이란 게 임 국장의 전망이다. 조급성을 버리고 김포시민으로서 자긍심과 주인의식을 가지길 빈다고 말했다.

공직에서 물러나 새출발하는 그의 화두는 시민들의 자긍심을 어떻게 고취할 것인가이다. 김포시민이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질 때 김포만의 가치를 자기화할 수 있고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임 국장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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