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햇빛
시력을 잃은 제자 범빈이에게 선생님은 친구가 됐다. 김포 북변동에 사는 범빈이는대학생일 나이에 맹인학교 고됐3고이 감성이 넘치고 소신이 강한 장원화 당시 담임선생님은 곳곳에 어린 범빈이 추억을 펼치는 길잡이가 됐다. 둘은 범빈이의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구 경찰서의 느티나무와 친구들을 놀렸던 김포초등학교 뒷골목, 단골로 소풍을 왔던 장릉의 눈길 등을 걸으며 벌써 인생과 청춘을 버무리고 있었다. 두 어깨에 내리는 햇빛이 평등하다. 사진은 장릉 연못 위. <글 사진 김동규>

보일러를 멈춘 집은 꽤 서늘하고 작은 전기장판 하나 약하게 켠 거실 매트 위에 큰 이불 둘러쓰고 웅크리고 누워 책을 읽으면 겨울 밤은 절로 행복하다. <철학자와 늑대>는 11년 동안 같이 산 늑대에게서 삶의 가치를 배운 한 남자의 목소리가 담긴 책. 괴짜철학자 한 명, 우아한 늑대 한 마리와 동침중이다. 늑대 브레닌은 "행복이란 게 토끼보다 좋은거야?"라고 묻는다. 이건 쉽다. 미국 늑대니까 이정도 간단한 답변은 영어로도 가능하다. "FOR ME, At least, happiness is more important than the rabbit." 그런데, 브레닌? "행복이란 게 도대체 뭘까……."



두려웠던 소년은 홀로 걷는 청년으로 자랐다.
세월이 흘러 꽃 같은 여인과 사랑도 할 테고
10여 년 전 네 아버지가 그랬듯
어느 3월엔 너도 어린 손목을 잡고 교문을 들어설 날 오겠지.
그 아이도 널 닮아 얼굴 가득 함박웃음 꽃밭이겠다. 아무렴.


브레닌과 대화 중에 범빈이게서 전화가 왔다. 작년 연말 눈 내린 일요일에 만나 피자를 같이 먹고 돌아가던 길, 내가 몰던 차가 빙판에 미끄러져 3중 추돌사고를 내고는 목사님이 꿈인 범빈이를 그 자리에서 하나님 세상으로 보낼 뻔 했던 그 날 이후 딱 1년 만이었다.

범빈이는 3년 전 내가 하성고에 발령을 받아 처음으로 담임한 반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2학년 남학생이었다.

중3 때부터 까닭 없이 시력이 나빠졌고 결국 시신경 손상으로 인한 시력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던 범빈이는 같이 놀던 친구들과 약속한대로 하성고로 진학했지만 텅 빈 하루하루를 2년 버티다 자퇴서를 내고 서울 한빛맹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다. 내년이면 그 학교에서도 3학년이다. 이번에 KBS <다큐공감>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며칠 뒤 범빈이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 사제지간이어도 여선생과 남학생이니 세상 요란하게 만들지 말자며 하루를 제안했다.

범빈이가 여행지를 물었다. “응, 김포.” 구 김포경찰서 → 김포초등학교 → 김포중학교 → 장릉 "김포로 여행가자는 말이 새롭고 신기했어요."

처음으로 간 곳은 구 김포경찰서. 경찰인 아버지를 따라 경찰서 건물 뒤편 사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범빈이는 마당 한 가운데에 있는 큰 나무를 떠올렸다. 세월 묵은 아름드리나무는 아이에게 더없이 큰 미끄럼틀이고 단단한 정글짐이었으리.

신나게 나무를 타고 오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 앞에 범빈이가 섰다. 하늘을 갈가리 찢으며 뻗어 오르는 저무수한 나뭇가지가 성년이 된 범빈이의 상념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 장소는 걸을 것도 없는 경찰서 옆집, 김포초등학교다. 교문으로 이어진 오르막길은, 범빈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올라가던 기억이 생생하게 박힌 곳이다.

평소 너무 강해 보여 무섭기까지 하던 아버지는 그날 두터운 손으로 아들의 여린 손목을 꼭 잡고 걸었다.

오늘 범빈이는 그 길을 혼자 오르고 싶어 했다. 바닥은 얼어붙어 우둘투둘했고, 길은 삐뚤빼뚤 난코스가 많았지만 그러자고 했다. 두려웠던 소년은 홀로 걷는 청년으로 자랐다.

세월이 흘러 꽃 같은 여인과 사랑도 할 테고 10여 년 전 네 아버지가 그랬듯 어느 3월엔 너도 어린 손목을 잡고 교문을 들어설 날 오겠지. 그 아이도 널 닮아 얼굴 가득 함박웃음 꽃밭이겠다. 아무렴.

김포중학교를 향해 범빈이가 기억하는 작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걸었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다가 만난 벽화마을처럼 들꽃 같고, 몽롱한 눈빛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피맛골의 외진 자유 같고, 부산 감천마을의 고달픈 달빛계단 그늘진 쪽빛창문, 노곤함 같기도 한, 이 누더기 조각보 길을 김포는 왜 진작 보여주지 않았을까?

도시의 골목길만으로도 많은 사진첩이 나오는데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김포는 이 귀한 골목길을 왜 잊어 버렸을까? 그 골목길의 끝에 세 번째 추억의 장소인 작은 공원이 나왔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이 공원에 모여 앉아 지나가는 애들을 노려보며 불러다 괴롭히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고를 쳤다고 했다.

눈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문제아였다는 고백. 내성적인 성격의 범빈이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왠지 모를 허전함에 시달렸는데, 중학교 들어오면서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늦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같이 놀던 게 그렇게나 속이 시원하고 재밌었단다.

시력을 잃고도 하나님께 제일 먼저 '좀더 놀게 해주신 다음에 시련을 주실 것이지…….' 했다고 하니, 시련 주신 하나님도 순간 어이없지 않았을까.

집밖을 잘 나가지도 않던 범빈이에게 날마다 찾아와 여름수련회에 같이 가자고 유혹하던 선교사님이 있었고, 그분 덕에 범빈이는 가슴 속에 하나님을 맞아들였다. 전국성경대회에서 전국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열심이고, 주말이면 서울에서 김포로 돌아와 주말마다 교회 예배를 드린다. 훤칠한 키에 얼굴도 말끔해서 모델과 연기자를 꿈꾸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런웨이를 걷는 목사님이 될 거란다.

SHE : 하성고 2학년 5반 교실→성아분식→전류리 포구
“내게 김포는 하성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찾은 김포의 추억은 하성고, 2011년 우리반 교실. 마음에 안 드는 교사를 끌고가 패버렸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떠도는 18마리의 늑대들은 1주일 만에 고맙게도 우리 선생님하며 나를 따랐다.

어느 날은 인문계 교실에 수업하러 들어갔는데 한 남학생이 보던 신문을 접어넣다가 구겨지자 자기도 모르게 "씨발" 하고 들릴락말락 내뱉었다. 그 소문을 돌려돌려 들은 우리반 남자들이 우루루 그 교실로 몰려가 남학생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서 "니가 우리 선생님한테 욕했냐!"며 침을 좀 뱉어주고 돌아왔다.

우리 반 애들은 침묵했고 돌고 돌아 나중에야 듣게 된 애기. 거칠지만 알고보면 대책없이 정만 많은 그 녀석들과 1년을 살았던 곳이 그리워 올라갔다. 텅빈 책상에 우리가 보였다.

가슴이 내 얼굴만한 왕가슴 선주는 '성아분식에서 짬밥을 안 먹었으면 하성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 길로 가게에 들어가 참치와 당근을 잘게 버무린 따뜻한 밥 한 공기에 떡볶이 국물을 한 국자 뿌려주시는 짬밥을 비벼 먹었다.

학교 앞 좁은 골목길에서 30년 넘게 짬밥을 파신 덕에 부모자식이 똑같이 성아분식 짬밥의 기억을 공유한다. 졸업생들도 학교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성아분식에 들러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린다. 성아분식에 가면 소녀 같은 얼굴로 단돈 천원에 주먹밥을 말아주시는 생불이 계시다. 짬밥은 이천원.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전류리 포구. 지나는 버스가 없어 택시를 타야 했다. 사람은 많지 않았고 말린 숭어가 가게 앞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노래 잘 하는 세훈이는 '해질녘 전류리 포구의 가로등이 켜질 때 그 밑에 앉아 마시는 소주가 제맛'이라는 고등학생이 공식적으로 해선 안 될 말을 했고, 나는 그 말을 쟁여두었다.

그해 겨울, 우리반 늑대 중 한 마리가 하늘나라로 갔고, 나머지는 학교도 나오지 않은 채 장례식장을 지켰다. 학교도 중요하지만 친구에게 할 도리를 다 하는 것도 중요케 생각한다는 이 동네 어머니들은 아들딸들의 결석을 이해해 달라 부탁하셨다.

평소엔 특수분장 수준의 화장을 하던 여학생들이 생얼로 손님들께 육개장을 날랐고 남학생들은 우루루 모여 어른들의 일손을 돕거나 자리를 지켰다. 학적이 담당업무인 나는 그 아이를 제적처리하고 이름을 모두 지운 뒤, 조퇴를 하고 나와 혼자 전류리에서 소주를 마셨다.

멍청하게 앉아서 깡소주만 들이키자 주인이 라면 하나 끓여줄 테니 같이 먹으라며 지나갔다. 뜨거운 김이 와락 솟구치는 라면 한 그릇이 나오고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는데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교사랍시고 애들 토닥이느라 며칠째 우겨넣기만했던 감정이 한순간 터져나왔다. 라면에 든 새우와 작은 게를 껍질째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게 참게라면. 지금도 나를 단골손님이라며 반겨주는 가게 주인에게 참게라면을 주문하니, 아쉽지만 지금은 그 메뉴를 안 판다고 하신다.

대신 바다와 강이 만나는 절묘한 전류리에서 이 겨울에 제철을 맞은 퉁실한 숭어회를 접시에 담아 내오셨다. 미래의 목사님인 범빈이와 함께이니 음료는 아쉽지만 사이다다. 끙~

행복은 토끼만큼 좋은거야~
저녁 6시, 전류리에서 나와 장기동 다이소 앞에서 만날 사람들을 기다렸다. 얌마졈마하며 그 교실에서 같이 살던 두 마리 늑대가 처녀총각이 되어 연애를 한다기에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남편은 귀한 커플과 보고픈 범빈이에게 밥을 사겠다고 딸아이와 함께 오는 길.

팔짱을 끼고 나란히 서서 범빈이가 피곤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하루 종일 찬바람 맞은 볼은 딱딱하고 발바닥은 노곤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마음 나눈 고마운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진정 행복이다.

온몸으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넌?" 하고 물었다. 어깨에 힘을 꽉 주며 범빈이는 대답했다. "전 강인한 남잡니다." 눈사람모양 향초를 정성껏 포장해 들고온 친구들을 보며 범빈이는 '끔찍하다'고 했고 곧이어 '징그럽다'고 했다.

커플은 '너 좀 맞아야겠다'며 윽박질렀다. 남편은 스무 살 청춘들의 손을 꼭 잡아 악수했고 범빈이를 안았다. 딸아이는 언니의 고운 머릿결이 좋아 계속 만지작거렸다.

김포에 이사와 살던 첫 해, 김포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로 안개, 공사, 먼지를 꼽았다. <무진기행>만큼이나 음울한 대답이다.

물론 김포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시 전체는 여전히 공사중이고 먼지는 여전하며 봄마다 두터운 안개는 아침을 막아선다.

하지만 터키의 시인 사랑하는 나짐 히크메트는 노래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라고. 아름다움은 더디 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고 있다는 것이고 이미 내 곁에 바짝 다가와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가장 행복한 저녁을 먹으며 그 역시 행복이 아니어도 좋다고 소리내어 본다.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았으므로.



김범빈 : 한빛맹아학교 고3학년, 목회자가 꿈 성격 쾌할. 하성고 1년 때 시력상실
장원화 : 하성고 국어교사, 첫 부임지, 담임교사 때 범빈이를 맹아학교로 떠나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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