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자락에 이어진 봉우리는 천자봉입니다. 어깨동무하고 있는 것 같은 형제 봉우리가 일곱이라고 해서 칠선봉이라고도 하지요. 주말이면 깁밥이나 삶은 달걀을 싸들고 그 봉우리로 소풍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동쪽으로는 월출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칠산 바다가 보입니다. 그 산에는 무리지어 피어나는 할미꽃이 많습니다.
몇 년 전에 할미꽃 한 뿌리를 캐어다 처마 밑에 심어 놓았지요. 올봄에 할미꽃은 세 무더기로 번져 부지런하게도 서리가 걷히자마자 피어났어요. 사람들이 왜 그 꽃을 할미꽃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할미꽃을 보며 이름을 새로 지었답니다. 아기꽃이라고요.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이며 고개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떨구고 있는 것을 보면 아기꽃이라고 해야 더 좋을 것 같아요. 할미꽃은 고단하게 죽은 할머니의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지요. 혹시, 할머니가 죽어 아이로 태어나고 싶어 한 것은 아닐까요? 논리를 이렇게 비약하면 제가 아기꽃이라는 고집을 너무 부리는 것인가요?
하하.
할미꽃은 꽃잎이 지고 나면 더욱 찬란해집니다. 민들레 꽃씨보다 더 크고 긴 꽃씨가 바람에 날리는 것은 장관이지요. 할미꽃 꽃씨가 나는 것을 보면 천사를 연상하게 됩니다. 향기도 없고 찾아오는 벌 나비도 없이 고개 숙이고 있다가 마음대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면 그 꽃의 탈퇴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사는 고장은 산에 자생하는 춘란이 많습니다. 읍내에서 봄과 빠짐없이 구경합니다. 언젠가, 전시된 난 가운데 백화라는 푯말을 붙이고 있는 꽃을 보았어요. 주지가 의연하게 뻗었고 설판과 부판도 의젓했습니다. 백색 꽃잎에 가느다란 실핏줄 같은 붉은 줄이 그어져 있더군요. 소복 입고 고깔 쓰고 살푸리춤을 추는 여인과도 같았고 교태를 발산하는 물오른 처녀와도 같았습니다. 고고한 품격과 지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화려한 자태를 맘껏 뽐내는 꽃송이, 하나의 꽃송이에 그렇게 많은 메시지가 숨어 있다니, 그 꽃을 보는 순간, 숨을 멈췄습니다. 난 애호가들이 난을 사랑하는 이유가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에는 문외한인 저도 꽃이 사람에게 주는 감동이 그렇게 숨막힐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으니까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는 할미꽃을 보며 저는 그날에 보았던 백화의 감동을 맛보곤 합니다. 꽃을 보는 사람들의 감상이 다 그럴까요? 난꽃이든 할미꽃이든, 꽃이라고 하는 것은 뿌리로 물을 길어 올리고 이파리로 햇볕의 자양분을 빨아들여 제 나름대로 진리를 품고 피어나는 결정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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