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전하는 이야기

정몽주의 제자인 박신이 통진 유배 시절 하성면 가금리에 심었던 600년 된 향나무. 박신이 수양을 위해 심었다고 해서 학목(學木)이라 불린다. <사진=정현채>

사람 살아가는 곳에는 나무가 가족처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집 울타리 안이나 밖에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과일나무가 있으며, 집을 지켜주는 탱자나무, 꽃을 아름답게 피우는 자목련, 그늘을 만들어주는 느티나무, 향기 그윽한 라일락, 운치를 더해주는 대나무 등 집 가까운 곳에 나무 없는 곳이 없다. 나무는 사람에게 물질적인 것을 제공해 주며 여름에는 쉼터를 만들어준다. 나무는 향기도 다르고 색도 다르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이 사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나무부터 수백 년 동안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무가 있다.

마의태자가 신륵사에 있는 은행나무 가지를 꺾어 지팡이를 삼았던 것을 용문사 앞뜰에다 꽂으며 “단단한 뿌리를 내려 신라의 천년 사직을 대신해 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망해가는 나라의 염원을 나무에 대신 담아 후세에 전하는 이야기다. 지금은 그 지팡이가 가을이면 황금색으로 천지를 누렇게 물들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논산시 성동면에도 있다. 전우치은행나무다.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전우치가 호남지방에 내려오던 중 지금의 도로변에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꽂으면서 “지팡이에서 싹이 나와 나무로 자란다면 전 씨가 번창할 것이고 죽으면 전 씨는 남의 그늘 속에서 살 것이다”라 했다고 한다.

마의태자나 전우치는 가족이나 국가도 나무뿌리처럼 깊게 내리고 가지와 열매가 번성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은행나무이야기는 아산시 배방면에 맹씨행단(孟氏杏壇)이란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는 맹사성의 고택에도 있다. 고택 안에는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고 행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행단이란 본래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기록에서 나오는 말이다. 2012년 8월 2일 학인(學人)들과 중국 곡부에서 행단을 보고 배움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나무와 연관지어 보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과 역사는 나무뿌리에 비유한다. 그것이 본(本)이다. 한자도 나무목(木)에다 일(一)로 아래를 고정한 것이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그 뿌리에서 줄기가 나오고 가지로 뻗으면서 무성해진다. 나무뿌리만큼 줄기가 자라고 가지와 잎과 열매가 나온다. 그 근본을 벗어날 수는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연이치를 알고 사람 살아가는 근본을 아는 공부가 먼저다. 그래야 흔들림이 없이 펼쳐갈 수 있다. 배움의 자세가 이치에 어긋나는 곳에는 개인도 가족도 이웃도 사회도 불편하고 갈등이 산만하게 일어난다. 근본을 아는 인성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김포에는 학목(學木)이라 불리는 나무가 있다. 본디 學이란 효(爻)를 본받는 것이라 한다. 자식이 부모를 본받는 것이 學의 근본(本)이다. 그래서 부부자자(父父子子), 형형제제(兄兄弟弟)다.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자식이 자식다우며, 형이 형답고 동생이 동생답다는 것이다. 배움의 근본은 이것에서부터 출발함은 부정할 수 없다. 현재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마을 입구에 있는 600년 된 향나무가 바로 학목(學木)이다. 박신이 향나무를 심고 그 아래서 심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궁구한 곳이라 하여 학목이라고 한다.

박신은 정몽주의 제자였으며,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하고 세종 때 이조판서로 재직하고 있었으나 아래 사람들의 비리에 연루되어 1419년부터 1432년까지 13년간 통진에 유배되었다. 그는 통진과 강화 갑곶진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내리기 위해서 한 겨울에 갯벌에 빠져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사재(私財)를 털어 갑곶나루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현재도 석축으로 된 나루터가 있다. 박신의 學木이 결코 헛되지 않은 이유다.

나무는 행단처럼 제자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쓰임이 있는 것도 있고 박신처럼 심신 수양의 푯대로 삼았던 나무도 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풍요와 평화로움을 기원하는 공동체나무도 있다. 김포에서는 10월 상달이나 정월에 마을에서 모시는 나무에서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신목(神木)으로 삼았던 나무는 마을에서 소중하게 보존하였다. 국가에서도 이와 같이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무와 오래된 나무 중에서 보존이나 증식에 가치가 있는 것을 『명목(名木) 보목(寶木) 당산목(堂山木) 정자목(亭子木)·호안목(護岸木)·기형목(畸型木)·풍치목(風致木)』으로 분류하여 지정하고 있다.

300년, 600년 된 보호수들이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 있듯이 사람도 도시도 국가도 뿌리깊은 나무처럼 근본을 잘 세워야 천년을 가는 도시가 되고 국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리더와 지도자 및 CEO는 능력 있고 정성이 깃든 나무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 꽃이 되고 열매가 되려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반대가 되어 뿌리가 부실하면 줄기와 가지는 잔바람에 꺾이고 부러져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2013년 癸巳年에는 뿌리깊은 가정, 뿌리깊은 도시, 뿌리깊은 국가가 되기를 기원하며, 癸巳年에는 이웃을 위하여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어보자.
정 현 채(지역문화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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