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사할린 동포 합창단 이야기(1)

 “이렇게 고국의 무대에 서서 모국어로 노래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12년 12월 17일, 김포 통진두레 문화회관에서 열린 사할린 송년음악회에서 김애자 사할린 동포회장의 인사말 중 한 대목이다.

‘사할린’은 한민족에게 아픔의 상징어다. 해방 후 남북 모두에게 잊혀져서 발길이 묶여버린채 귀국하지 못하고 수십년간 망향의 한을 곱씹으며 생을 살다간 동포들의 회한이 서린 낱말이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후 90년대 들어 일부 동포들에게 영주귀국 길이 열렸다. 귀국 초창기에는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그 규모도 확대되어 현재 전국적으로 4천여명의 사할린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오늘날 남한사회에서도 점차적으로 해외동포 중 한 지역민 정도로 규정되어가는 모습이다. 한국어보다 러시아말이 자연스러운 동포 어르신들이다. 그럼에도 이분들이 사할린에서 한인의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 기울였던 부단한 노력도 한국사회에선 낯선 이방인의 모습을 해소하기엔 왠지 역부족으로 보여진다.

김포엔 사할린 영주귀국 동포들이 2012년 12월 현재 260명이 거주하고 있다. 196명의 기존 어르신들 외에 12월에 3차 영주귀국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64명의 귀국이 이뤄졌다. 사할린에 연고를 둔 65세 이상의 고령자 중 두 사람이 한 쌍으로 들어와야 가능한 동반입국 조건이 엄격하다. 이 탓에 자녀들과 손주들, 친지들과 이별을 감수하면서 단행한 이주로  새로운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다.

막상 귀국이 이뤄졌지만 문화적 소외감과 정체성의 혼란은 또 다른 장애물이다. 한국어를 사용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다양하고 섬세한 감정까지 공유하기엔 아직 벽이 두텁기만 하다. 거기에 냉전해체 전까지 수십년간 사회주의 시스템에 익숙해있던 어르신들에게 한국사회의 치열한 자본주의 단면은 낯설기만 하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분들이 평소에 경로당에 모여 TV를 시청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는 거다. 극소수의 엘리트 출신 동포들은 러시아 관광객 가이드를 하거나 번역, 혹은 무역 중개업 분야의 통역에 일손을 보태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이러한 환경의 사할린 어르신들에게 합창이란 형식의 음악 프로그램을 제안하게 된 계기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김포시 지역경제과 주최 사회적 기업 아카데미 수강을 한 몇몇 시민이  아이디어를 모으는 과정에서 문화예술 분야의 프로그램으로 착안한 것이 지난 6월의 일이다. 그 후 관할 세무서에 문화관련 비영리 단체등록을 하여 고유번호를 부여받고 시청과 경찰서, 적십자사 관계자등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하고 9월 들어 첫 연습을 시작하였다. 두차례 진행된 사전설명회에 모인 어르신들의 모습은 생뚱맞은 표정 그 자체였다. 한국 대중가요도 부르기 쉽지 않은데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전문합창이란 것이 가당키나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몸도 불편하고 저마다 한 두 가지씩 지병이 있는데다 호흡도 거칠어지는 나이에 합창이란 것이 낯설어 보이는 모습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단 한번 나와서 경험해보시라’는 간곡한 말씀에 10분의 어르신이 첫 연습에 참여하였다. 김포시 통진두레 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첫 연습은 지휘자 이상주 선생의 리드아래 아리랑과 고향의 봄등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 함께 불려졌다. 성악을 전공하기도 한 이상주 선생의 노래연주도 함께 감상하면서 음악과 친해지는 연습으로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그후 11월 26일 정식 창단식을 하고 12월 17일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아래 송년음악회를 치르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과정의 연속이었다.

전국적으로 실버합창이 평생학습의 붐을 타고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국립합창단에서는 문화관광부의 후원아래 2012년에 제1회 전국 실버합창대회를 열기도 했다. 9월에 사할린 합창단을 처음 띄울 때는 11월에 열릴 예정이던 이 대회에 출전할 야심찬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연습을 시작하고 보니 넘어야 할 벽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보통 젊은 시절에 프로나 아마추어로 음악관련 활동경험을 갖고있던 사람들이 일정비율을 이루는 일반적 실버합창단과 달리 대부분의 사할린 어르신들은 악보를 보는 법등 음악관련 기초지식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다 사할린 역방문등으로 몇 달간 자리를 비운다거나 궂은 날씨, 불안정한 몸상태, 개인적 기타 일정까지 겹치면서 안정적인 단원확보마저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불과 석달만에 자리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지역 여러 행사에 찬조출연도 하고 경기문화재단의 후원도 받아 자체 송년음악회도 무난히 치뤄냈다. 아마도 사할린 합창단은 김포지역이 전국 최초가 아닐까 싶다. 누가 나에게 이 모든 것의 성과물에 기여한 공로자를 물어본다면 ‘사할린 어르신들 본인들’이라고 주저없이 말하고 싶다. 한민족 특유의 신명과 끼가 유전자속에 고스란히 숨쉬고 있어 멍석을 깔아주니 춤과 노래가 절로 나오더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싶기도 하다. 나를 비롯한 준비일꾼들은 멍석을 깔아주는 일 말고는 달리 한 일이 없다는 말이 나을듯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은 전 인류의 공통언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음악이 특정부류나 특정세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 만인이 향유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이 이뤄졌을 때 현실속으로 다가올 것이다. 김포지역 사할린 어르신들이 지난 석달간 이뤄낸 성과물은 이 말을 지구촌 한구석에서 현실화 시킨 생생한 사례로 남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사할린과 한반도를 문화적으로 아우르는 자그마한 몸짓이 음악을 통한 세계의 평화를 일구어내는 나비효과로 연결되기를 염원해본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